밤새 눈보라 휘몰아 치던 대피소..
아침에 눈은 그쳤으나 여전히 하늘은 어둡다..
대피소의 아침 기온 영하 19.7도
향적봉 정상 영하 23도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른 아침,
누군가 설원에 길을 만들어 놓았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을..
세찬 바람만큼이나 빠르게
잠시 잠깐 보여주는 하늘,
그 하늘이 시리다..
누군가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그 독서와 같은 즐거움을 느낀 날..
인생에는 직진 뿐이다.
좌회전이나 유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해도.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처음으로 다시 되돌리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정면승부가 두려워 옆길로 살짝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울거나 즐기거나.
펌 글
박산 / 술이 한잔 하고 싶다
매일 얼굴 맞대는 내 아내 말고
허구한 날 술잔 쨍 하는 내 오랜 친구들 말고
조명 받은 술잔 속에
낭만이란 사치가 들어앉아 웃고 있는데도
덩그러니 풀린 눈알만 빠져서는
몇 푼어치 돈만 생각하는
그런 속물인
내 비지니스 파트너들 말고
가끔은 말이다
가끔은 말이다
슬쩍 이메일로 휴대폰 메시지로
시간 장소 일방 말해버리고
못 받아서 나오기 싫어 안 나오면
'나 혼자 마시고 말지'하는 생각으로
술 한 잔으로 얼굴 보면 좋다
그가 말이 없으면 내가 말이 많다
그가 말이 많으면 턱 괴고 내가 들어주지
여자면 이성의 향내가 좋고
남자면 접촉의 자연스러움이 더 좋다
둘 다 삶에 찌든 진실만을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중략)
술 한 잔에 흔들리는 그의 눈매가 촉촉해지고
그의 입술이 갈증어린 삶을 토로한다면
삶은 돼지고기 몇 점에 깍두기 한 접시 동무한
그 술이 너무 맛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많이 알려 하지 말고
그냥 묵묵히 한 잔 따라놓고
비우지 않아도 재촉하지 않아
결국 내가 비운 그 술 한 잔이
더 맛있다
그런 자리
그런
술이 한 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