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태백에 눈이 온다는 소리에,
카메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허전한 발걸음으로
늦은 저녁, 산 밑에 도착..
빈 속에 소주 2병을 부어 넣는다..
알콜이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맨 끝을 적신다..
허름한 방구석에 작은 몸 구겨 넣어 잠을 청해본다..
귀에 찔러넣은 이어폰에서의 음악소리는,
머릿속과 따로 놀고..
괜시리 전화기만 만지작 거리다..
새벽 2시 반,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기가 '웅~' 하고 운다..
점심 때까진 빈 속이 될거라는 생각에
저녁에 준비해둔 컵라면을 억지로 밀어 넣는다..
밖에 나서니
바람난 바람처럼
바람이 생글거린다..
혹독하게 추워야하는데..
오늘도 벼르던 사진은 정녕 아닌것인가...
3시 반이 좀 넘었을라나..
유일사 주차장이 휑하니 비어있다..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던 곳이었는데..
하기사 태백의 호시절은 이미 지나간 터,
어제 예보완 달리 눈은 별로 오지 않은 듯..
그래도 아이젠을 꿰어차고 천천히 새벽을 가른다..
푹한 기온에 바닥이 녹았다 다시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있으니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얼음바닥과 아이젠이 부딪혀 내는 굉음이
조용한 한밤중의 산골짝에 메아리 쳐 돌아온다..
한참 추울 새벽시간임에도 여전히 날은 푹하다..
얼굴과 등엔 연신 땀이다..
아직도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시간,
정상에 도착하니 기대했던 눈도, 상고대도 그 모습은 아니보인다..
다만,
어제 눈과 비로 인한 습도 탓인지
저 산 밑의 발 아래로 부터 운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구름위에 노니는 신선이 된 듯 하다..
저 멀리 천제단이 보이고..
저 멀리에서 발그스레 여명이 비추인다..
그것도 잠시..
부끄러웠던지 이내 그 모습을 감춘다..
裸木이 차디찬 凍土에 발목을 깊이 묻고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일은 그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지닌채..
雲海속에 머리만 살짝 드러낸 山群들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같다..
우측 저 멀리 천제단이 보인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하략)
이생진 / '보고 싶은 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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